삼국사기 강수전에 따르면 "강수는 원래 임나가랑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다가 강수가 중원경 출신이고 김유신의 후예라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서 '한원'에 따르면 '가라와 임나는 좌우로 나란히 붙어있다. 둘 다 신라에 망하였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임나는 부산(기장, 동래)를 말하고, 가라는 김해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박혁거세 기록부터 '왜'라는 기록이 나오고, 신라본기에는 5세기까지 '왜'라는 글자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거의 50여차례라고 보면 된다. 박혁거세는 BC 50년 경부터 등장하는 인물이니까 이 때부터 서나벌 근처에 왜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신라본기를 보면 신라와 왜는 계속 싸우기도, 화친하기도 하고, 신라가 왜에 복속되기도 한다(박제상 참조). 반면 백제본기하고 고구려본기에는 왜라는 글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백제본기에 '왜'라는 글자가 처음 출현하는 것은 4세기 말이다.
그리고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 '출운'이라는 지명이 있다. 바로 그곳이 사서에 나오는 다파나국이라는 곳이다. 또는 용성국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석탈해 집단이 경상도로 들어왔다. 그곳 출운시가 바로 왜(구주)에서 동북 천리 떨어진 곳이고, 석탈해는 자신이 왜에서 동북천리 떨어진 곳, 즉 용성국에서 왔다고 진술했다. 석탈해 집단은 우츠 강철이라는 선진 철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의 건국세력 중 하나인 호공 세력도 '왜'에서 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호공은 특이하게 박을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고 나온다. 이들 왜에서 온 이주민들은 신라의 건국세력이자 지배세력 중 하나이다.
그리고 경북 김천 또한 임나가 지배했다는 설이 있다. 대가야가 경북 김천(감문국)을 왜(변한)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임나 가야의 원래 이름은 의부 가라이고 훗날 임나로 변경되었다. 임나 안에는 10개의 소국이 있고, 이들 소국들은 임나에 예속되는 시기도 있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도 있다.
나아가 경상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양직공도 신라제기'를 알아야 한다.
양직공도 신라제기에 따르면 '신라는 진한의 소국이고, 사라 또는 계림이라고도 한다. 나라가 작아 사신을 보내지 못하다가 모진(법흥왕)이라는 자가 처음으로 백제를 따라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신라는 왜에 속하기도, 한에 속하기도 한다"
위 문장에 따르면 6세기 중엽까지 신라는 진한에 속한 소국이었기 때문에, 만약 6세기의 지도를 그린다면 신라의 영역을 경주(서라벌)로 국한시켜야 하고, 현재 교과서들에 신라로 표시된 영역을 진한으로 고쳐야 한다. 가라는 김해, 임나는 부산과 경북김천을 거쳐 진주를 아우르는 삼각형 영역으로 그려 넣는다. 그리고 나머지 지역(충청도와 전라도)은 전부 백제로 표시하면 정확한 6세기 한반도 지도가 나온다. 그리고 경기도, 강원도, 경북 일부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그때까지 신라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지 못했고, 왜와 고구려의 부용국이었다.
출운이라는 지역은 일본어로 이즈모라고 발음한다. 왜에서 신라로 왔다고 기록되어 있는 집단은 석탈해 집단과 호공 집단이 있다. 그런데 정황상으로 미루어볼 때 신라 건국 세력이었던 사로 6촌 집단도 출운(이즈모)에서 경주(서나벌)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정리하자면 부산(동래, 기장) 등 철기 시대가 시작될 때 경상도 지역으로 이주한 세력이 강성해져 임나(의부가라)를 세웠고 이 임나는 시간이 지나며 진한 및 신라와 경쟁하며 경남, 경북까지 판도가 확대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다가 6세기 중엽 신라에게 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의부가라라는 명칭은 훗날 부산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다.
그 시기 동안 상당한 격변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격변들을 설명하는 사료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 지역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임나 안에는 10개의 나라가 있고, 이들은 독립적인 소국들로 활동하기도 하고 임나에 복속되기도 한다. 대가야(고령)나 남가라(김해)는 일단 임라의 속국으로 보면 된다. 대가야, 남가라 같은 소국들이 사료에 드문드문 나오는 이유는 이들이 임나에 복속된 상태에서는 임나로 기록되기 때문에 사료에 나오지 않고 독립된 상태에서만 소국으로 사료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특정 가야 소국의 기록들이 사료에 거의 100년의 시간차를 두고 등장하는 사례들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임나가 망할 무렵에는 임나에 속한 10국이 대부분 망한 상태였고, 임나의 영역은 부산(기장, 동래)으로 축소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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